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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항암제
항암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화학 무기인 겨자 가스(mustard gas)에서 비롯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개발되어 처음 사용되었고 정작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투에서 직접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과 독일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비축해놓았던 생화학 무기였다. 그러다 1943년 이탈리아 전선이 바리 항구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함선이 독일 전투기의 폭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침 폭격을 당한 미 군함은 겨자 가스를 가득 적재하고 있었고, 폭격에 의해 누출된 겨자 가스에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000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군인들을 치료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감소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당시 예일대 교수였던 루이스 굿맨(Louis Goodman)과 앨프리드 길먼(Alfred Gilman)은 겨자 가스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백혈병 환자 치료에 적용하는 실험을 감행한다. 그래서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에게 적용했고, 환자들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해서 항암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미국에선 매년 2만 150명이 림프암으로 사망한다. 겨자 가스를 이용한 최초의 항암제가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초기 생쥐 실험에서 암이 작아지는 결과가 나왔지만, 다른 생쥐로 다시 실험했을 때는 재현에 실패했다. 처음부터 다른 생쥐를 골랐다면 지금의 항암 치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환자에게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고 나서 나중에 돌이켜보니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항암 치료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당시에는 화학 혁명이 일어났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학 물질들의 위상은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지금에 와서야 광고 목적으로라도 '화학'보다는 '천연', '자연'이 더 선호되는 세상이 된 덧이지, 당시의 시대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이른바 플라스틱 혁명 시대, 화학 기술이 경이로워 보이고, 그것이 풍요를 상징하던 시절이었다. 화학이 미래이고, 화학이 최고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사람의 혈액에 주입해서 암과 싸운다는 아이디어가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암 산업이 동력을 얻은 후였다.
많은 환자가 간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항암 치료는 할 때만 고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되는 부작용에 시달린다. 영국의 데이터를 인용하면, 약 50만 명이 암 치료 후 건강 상태 악화나 장애를 얻게 되었다는 통계다. 약 35만 명이 만성 피로, 무력감, 성 기능 장애를 호소했고, 약 24만 명이 정신적인 문제를, 약 20만 명이 신경통과 같은 통증 장애를, 약 15만 명이 요실금과 같은 배뇨 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항암제가 독극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독극물로 분류되어 특별 관리한다. 독극물일 뿐만 아니라 1급 발암 물질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방암 항암제 타목시펜(Tamoxifen) 자체가 독극물이자 발암 물질로 분류된다. 10원짜리 동전 세 개 정도의 양이 치사량이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장갑을 두 개씩 착용한다. 전혀 다른 장기에 2차 암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독극물을 혈관에 넣어 암 치료를 시도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괜찮다고 받아들일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에 모두 감당할 만한 부작용들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겪어보면 힘들고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마음 아픈 고통들이다. 이렇게 해서 확실히 암이 낫기라도 하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치료는 치료대로 실패하고 장애와 고통만 얻는 경우가 많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데 항암 치료에 매달린다면, 죽기 전에 먼저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몸은 몸대로 고생하다가 결국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음에 이른다.
미국에서 암으로 죽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대부분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죽는다. 부작용이 아니다. 항암제의 직접적인 작용(direct effect)이 맞는 표현이다.
이미 병든 몸에 독극물을 주입하고, 잘라내고, 방사선 쬐는 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암 환자 대부분이 항암 치료를 안 받고 싶어 한다. 본능적으로 독극물을 주입받기 싫고, 고생하기 싫고, 아프기 싫은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들이나 친지들 모두 주위에서 꼭 해야 한다고 강권하니까, 하는 수 없이 내키지 않아도 하게 된다. 그것도 서둘러서. 당연히 대부분 결과가 안 좋다. 아주 일시적으로 암이 사라지거나 작아지거나...그게 전부다. 그리고 검사 결과, 암이 사라졌다고 좋아한다. 가족들과 기쁨의 파티를 연다. 사실은 암이 사라진 게 절대 아니다. 몸 안에 그대로 있다. 환자의 면역력이 여전히 바닥이라면 언제 다시 암이 재발하는지는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전이암, 2차 암을 일으킨다.
암의 재발
보통 혹(tumor)을 보고 암이라 하는데, '혹'은 암이라는 질병의 실체가 아니라 질병의 결과물일 뿐이다. 눈에 띄게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혹만 떼어내거나 혹만 죽이는 치료의 결과는 어떨까? 치료라고 할 수도 없지만 혹만 제거하면 반드시 암이 재발한다. 현대 암 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암의 재발이다.
병원 치료를 받는 대다수 암 환자들과 가족들이 겪는 사이클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다. 항암 또는 방사선 치료를 하고 펫 스캔이나 CT 스캔 검사를 통해 암의 크기 변화를 관찰한다. 당연히 치료에 반응해 암의 크기가 줄어들어 있음을 확인한다. 치료 결과에 의사도 좋아하고 환자도 좋아한다. 그러다 한참 지난 뒤 다시 검사했을 때 암이 커졌거나 사라지지 않고 크기에도 변화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실망과 절망에 빠진다. 다시 추가의 항암 치료가 시작되고 다시 검사를 한다. 그러길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검사했더니 다시 암이 커졌거나 다른 곳으로 전이된 것이 발견된다. 재발한 암은 원해 암보다 10배 이상 공격적으로 흉폭하게 변해서 나타난다.
미국암학회에서 출판하는 암 환자용 안내 책자가 있다. '암 재발 시 직면하는 심리적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친절한 안내 책자다. 암이 재발했을 때, 실망과 혼란에 빠진 환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교육용 자료다. 아에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거의 모든 암이 재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세대 면역항암제
항암제에 대한 공포심과 거부감이 커지자, 제약 회사와 의학계는 더 나은 '항암제' 신약 개발에 열을 올렸다. 항암제라는 개념을 차마 포기하진 못하고, 항암제를 개선해보겠다는 것이다.
'3세대 면역항암제 치료, 암 정복 미래 달렸다.'
이런 비슷한 헤드라인으로 언론 플레이를 할 때마다 제약 회사의 주식이 폭등하는데, 최근에 주목받게 된 것이 '면역항암제'이다.
1세대 '독성 항암제' 뒤를 이어
2세대 '표적항암제'가 나왔고
이제 3세대 '면역항암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면역은 항암제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에 딱 좋은 이름이다. 획기적인 암 치료제가 등장했다며 제약 회사가 설레발을 쳐댔다. 언론과 의학계도 이에 화답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제약 회사에서 신상품이 나왔는데 왜 자기들이 좋아하지?
내가 이처럼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저토록 좋아하는 이유가 암 환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가격! 1회 투여 시 3천 만원이다. 여보이(Yervoy)는 정맥주사를 통해 2주마다 총 4회 투여하는데, 60kg 성인 환자가 1회 약물 투여시 약 3천 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3개월이면 1억 2천 만원 정도의 약값이 드는 셈이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상황버섯도 여기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면역항암제가는 개념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싶자, 제약 회사 노바티스가 사업에 뛰어들었다. 노바티스는 존슨앤존슨과 매출액 규모 세계 1, 2위를 다투는 거물이다. 세계 각국에서 불법과 편법을 반복적으로 저질러왔다. 2015년 8월에는 26억 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대표 임원 등이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런 기업이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노바티스를 보면서 면역항암제가 더 우려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면역항암제가 하나둘씩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심장 발작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치명적 심장 손상 위험'이 미국 학회지에 보고되었다. 또 조류독감 때 자주 언급된 '사이토카인 폭풍(cytikine storm)'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슨 폭풍? 쉽게 말해,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사이토카인이란 면역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과다할 경우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일종의 과잉 면역반응이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증상이고, 제1형 당뇨를 유발하기도 한다.
2015년, 면역항암제 효과 및 안정성 연구들이 쏟아져 나온 지 1년만이다.
출처: 환자 혁명 - 조한경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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