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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안 걸리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감기가 어떤 병인지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대부분 감기와 독감과 몸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의사들이나 알면 되지 일반인들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나의 자녀들이나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등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알아두면 대처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기는 건강한 일반인들에게 큰 장애를 남기는 위험한 병은 아니지만 가장 흔한 질환 가운데 하나이고 발열, 콧물, 기침 등으로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준다. 일분일초가 소중한 현대인들에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전체 인구가 감기 때문에 결근하는 일수를 더해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기도 한다.
감기는 의학적으로는 상기도 감염증, 그중에서도 급성 비인두염을 말한다. 원인은 바이러스, 콧물감기를 주로 일으키는 리노 바이러스, 고열과 몸살을 일으키는 콕사키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등 20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너무 다양한 데다 변이도 잦아서 치료제나 예방 백신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가능하겠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
비인두에서 염증이 시작되면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염증 매개 물질이 뇌에 전달되고 전신 증상이 시작된다. 콧물이 흐르고, 몸에 열이 나고, 기운 없고, 소화 안 되고, 두통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증상이 아니다. 우리 뇌의 지시에 따라 우리 몸이 일으키는 증상이다. 왜일까?
답은 감기 바이러스와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다. 바이러스들이 일단 몸 안으로 들어오면 이에 대한 인체의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인체의 대사 기능을 활성화하여 저항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발열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다. 반면, 감기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백혈구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열이 1도 올라가면 10% 정도의 대사 기능 향상이 이루어진다. 그러다가 열이 지나치게 오를 경우, 두뇌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편도가 열을 차단한다. 편도선이 붓는 것이다. 또한 기침과 콧물을 통해 바이러스 침입 경로인 호흡기에서 바이러스를 배출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치료랍시고 해열제를 먹여 열을 낮춘다. 조금 불편하다고 콧물약을 먹이고, 진해거담제를 먹여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한다. 편도는 불필요하니 잘라버린다. 응원은 못해줄망정 감기와 싸우려는 우리 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엄마들의 가장 큰 공포는 열이다. 고열로 인해 뇌가 손상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발열은 보통 38.4도에서 40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41.5도가 넘어가면 뇌에 영향을 끼치지만 대부분의 경우 41도를 넘지 않는다.
38도 이하의 열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열이 날 때 엄마가 해야 할 일은 해열제를 먹이고 편히 자는 것이 아니라 열이 더 오르지는 않나 주기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열이 오를 때는 미온수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면 해열제만큼이나 효과가 좋다. 간단히 해열제 하나 먹으면 될 일을 가지고 왜 유난 떠느냐는 생각이 든다면 해열제를 먹여도 된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판단에 달린 일이다.
일기예보를 보면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환절기에 감기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거나, 또는 더워졌거나 일교차가 심할 때 걸리는 감기는 반드시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아니다. ILI(Influenza like illness)라고 해서 굳이 번역하자면 '유사 독감'이다. 바이러스와는 관계없이 우리 몸이 외부 환경 변화에 맞추기 위해 부대끼는 몸살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기나 독감 증상을 보이는 사람 중에 바이러스에 의한 경우는 13%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날씨나 환경 변화에 맞추기 위해 몸이 부대끼는 몸살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감기나 독감은 비율상 얼마 되지 않는다.
흔히 알려진 상식으로, 감기 바이러스는 저온에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남극에선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지만 남극에서도 열나고 콧물 흐르고 감기에 잘만 걸린다. 바이러스와 상관없이 몸살에 걸리는 것이다.
변화하는 기온과 환경 속에서 우리 몸이 36.5~37.5도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선 보통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변온동물인 파충류처럼 일주일씩 굶을 수도 없다. 끊임없이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항온동물의 숙명이다. 외부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을 때, 시상하부의 체온 중추가 작동해 체온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때론 지나치게 체온이 올라가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가 흔히 감기라고 생각하는 증상인 발열이나 콧물, 재채기뿐만 아니라 변비, 설사, 피로 등을 동반하는데 바로 유사독감이다.
환절기 외부 온도 변화뿐만 아니라 과도한 노동이나 갑작스럽게 무리한 운동, 스트레스, 수면 부족에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충분한 수면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쉬어가라는 몸의 신호로 받아들이면 된다.
감기와 독감을 같은 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증상이 미미하면 감기, 증상이 심하면 독감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독한 감기가 독감이 아니라 둘은 전혀 다른 질병이다.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로 발병한다. 독감의 원인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한 가지다. 다만 인플루엔자의 종류가 다양하다. H1N1 하는 식으로 알파벳과 숫자로 나가는 바이러스다. 매년 변종을 일으키기 때문에 백신을 만들기도 힘들고, 치료제를 만들기도 힘들다.
감염성 질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것이다.
독감 바이러스에 스치기만 해도 독감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거나 재채기하는 사람 옆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격리 시도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유비무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독감이 증상을 일으킬 확률은 3%도 안 된다. 유행성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생존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메르스의 치사율이 40%나 된다고 해서 우려했던 것이지 전염성은 오히려 낮았다. 메르스의 감염병 재생산지수(reprosuction number)는 1 기준으로 0.6 수준이고, 전염성이 강한 홍역의 경우 12에 달한다. 재생산지수가 1이면 한 사람의 감염자가 한 명의 2차 감염자를 만든다는 의미다. 숫자가 클수록 전염력이 높다.
감염자가 모두 증상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독감 시즌에는 거의 대부분이 목에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잠을 못 잤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영양 섭취가 부실해서 내 몸의 면역력이 약해질 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전염병이 확산될 때,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도 어떤 의료진은 감염되고 어떤 의료진은 괜찮다. 그 차이가 방역복 잘 입고 마스크를 잘 쓰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안 지키고의 차이도 아니다. 개인의 면역력 차이다. 이 개인 면역력을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백신을 맞았는가, 안 맞았는가의 여부보다 영양, 수면, 스트레스, 위생 이 네 가지가 가장 큰 작용을 한다.
메르스에 감염되었던 응급실 의사의 경우, 적어도 세 가지가 부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메르스 비상사태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며, 먹는 것도 부실했을 것이다. 눈앞에 닥친 엄청난 상황 속에 그 세 가지의 가치나 중요성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감기에 잘 걸린다고 해서 면역력이 약한 약골로 단정 지어선 안 된다. 통계에 의하면 성인은 1년에 감기 2~3번, 소아의 경우 6번이 평균적이다. 아이가 성인보다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것은 아이의 면역력이 아직 훈련 중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감기 안 걸리는 아니는 없고, 감기를 통해 면역력이 더 튼튼해지는 것이다. 그 아이가 커서 정말 약골이 되었다면, 혹은 커가면서 잦은 중이염, 폐렴, 천식, 알레르기, 아토피 등으로 고생한다면, 어려서부터 자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항생제를 먹인 엄마의 잘못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단 한 번도 항생제를 먹어본 적이 없다. 항생제가 쓸데없는 약이라서 안 먹인 것이 아니다. 항생제는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의 약이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구해냈다. 우리 아이들은 다만 죽을 일이 없었을 뿐이다. 감기는 죽을병이 아니기 때문에, 중이염도 죽을병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이염에 걸린 적도 없었지만) 항생제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대신 모유 수유를 했다. 여름 내내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밖에서 뛰어논다. 잠자는 시간은 매일 열 시간 이상 잔다. 아이들에게 하루 열 시간의 수면은 아이의 성장, 정서, 면역,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숙제나 공부는 감히 잠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없다.
샐러드나 채소를 거부하지 않고 좋아한다. 양파, 마늘, 샐러리, 가지, 당근, 파프리카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가능하면 유기농으로 먹였다. 입맛은 어려서부터 습관을 들여준 덕분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풍요로운 환경에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항생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위생 상태와 영양 상태가 좋기 때문에 감기가 중이염으로, 또는 폐렴으로 쉽게 번지지 않는다. 폐렴이 발생하면 그때 항생제를 써도 늦지 않다. 미리 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폐렴을 예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인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
출처: 환자혁명 - 조한경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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