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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나 지카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다고 해서 공포심이 확산되었는데, 매년 꼬박꼬박 찾아오는 감기나 독감도 치료제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치료약이 없다는데 무서운가? 그렇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그럽게 두렵지만은 않다. 메르스는 감기의 원인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다. 한때 유행했던 사스(SARS)와 똑같은 바이러스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워낙 증세가 미미해서 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이 없었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 가치조차 없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기 때문에 메르스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던 것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감기에 걸렸는지 알 길이 없다는 사실도 약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다.

    치료제도 없는데 병원은 왜 갈까? 치료제는 없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들은 많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해열 진통 소염), 진해거담(기침 가래 제거), 항히스타민제(콧물 억제) 같은 약들이 있다. 때론 증상 자체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을 완화시킬 필요도 있고, 환자의 불편함을 해소시켜 휴식 또는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약들이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이런 증상 완화제들과 함께 항생제를 처방해준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항생제 처방률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미국 어린이들은 스웨덴 어린이들보다 다섯 배 이상 항생제를 많이 복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사가 아무 조치도 안해주는 것에 대한 환자의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환자들의 의식이 그렇지 않다보니 의사들도 뭔가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항생제를 처방해준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때는 의사와의 상담이나 조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조치를 바라고 왔기 때문에 그냥 돌려보내면 불만을 토로한다. 안심하고 푹 쉬라는 의사의 말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안심하고 푹 쉬는 환자들은 많지 않다. 처음부터 병원에 약을 탈 마음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약을 얻어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감기는 약물보다는 집에서 잘 쉬는 게 올바른 처방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부분은 99.9%를 의미한다. 일주일 정도 잘 쉬면 자연치유되므로 항생제가 하는 역할은 없다. 항생제는 항바이러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항생제는 박테리아에 작용하지만 감기나 독감은 바이러스가 원인이고, 유사 독감이나 몸살의 경우엔 해당 사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잘 이해하는 의사들은 신중하게 항생제를 처방하기 때문에 의원에 따라 항생제 처방 비율은 0%에서 95%까지 그 격차가 심하게 벌어진다. 항생제 처방을 들기는 의사들은 폐렴이나 중이염 같은 2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의학적으로 볼 때 전혀 근거가 없다. 항생제는 예방 효과가 있는 약이 아니고, 함부로 남용해도 되는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소아과학회에서는 이에 대해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중이염에 걸린 소아 환자에게도 항생제 처방을 자제하거나 신중히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소아 환자들의 경우 항생제 남용을 주의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아이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뉴욕 의과대학에서 동물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고, 연구 논문이 2015년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되었다. 특정 항생제가 청력 상실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지원한 한국과 미국 공동 연구팀의 논문이 2015년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등재되었다.

    둘째, 항생제 남용이 소아비만을 유발한다. 2016년 3월 <미국소화기학회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만 1천 714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연구에서 2세 이하 아동이 항생제 치료를 받을 경우 소아비만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항생제는 오히려 어린이들의 면역을 크게 약화시킨다. 최근에 어린이 아토피, 천식, 알레르기 등 면역 계통의 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항생제 오남용이다. 우리 면역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장내 유익균이 멸절하기 때문이다.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 폐렴과 중이염에 반복해서 걸리는 아이, 방광염이 자꾸 재발하는 할머니 등 모두 항생제 남용이 원인일 수 있다.

    넷째, 항생제가 위장 장애를 일으켜 무기질 영양소의 소화와 흡수를 저해하면 영양 결핍이 발생할 수 있다. 영양소가 결핍된 상태로 무슨 건강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크고 작은 감염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항생제를 처방할 것이고, 결국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이다.

    다섯째, 항생제 과다 처방은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행위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덕분에 오늘날의 현대 의학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항생제 종류가 늘어나고, 의사들의 처방량이 급증하면서 항생제의 기적은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다. 내성균이 출현하면서 약효가 점점 떨어진 것이다.

    의학계는 당혹해하며 더 센 제품을 생산해냈지만, 그럴수록 더 강한 내성균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폐구균만 해도 1986년에는 페니실린으로 완치가 가능했다. 그러나 1990년 내성률이 25%로 치솟더니, 2000년대에 들어와선 80%를 넘어섰다. 내성률 80%란 항생제를 처방했을 때 100마리 세균 가운데 80마리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약의 기능을 거의 못하는 셈이다.

    급기야 1997년에는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라 여겨지던 반코마이신(Vancomycin)에도 멸절하지 않는 디제내성균(슈퍼박테리아)이 출현했다. 이로써 항생제는 만병통치약에서 '위험한 약' 취급을 받게 되었다.

     

     

     

     

     

     

     

     

     

     

     

    출처: 환자혁명 - 조한경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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